<버닝>(2018)은 이창동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영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삼아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한 미스터리 드라마입니다.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의 밀도 높은 연기와 함께, 사회적 불안, 계층 갈등, 존재의 모호함 등을 시적으로 표현해낸 작품입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버닝', '진실', '리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의 층위 깊은 의미를 분석합니다.
버닝, 상징으로 타오른 욕망
영화의 제목인 ‘버닝’은 단순한 불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의 ‘버닝’은 내면의 욕망, 사회적 분노, 계급적 좌절감이 불태워지는 은유적 장치입니다. 종수(유아인)는 가난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글을 쓰지만, 사회는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반면, 벤(스티븐 연)은 부유함과 세련됨을 무기 삼아 세상을 관조하며 살아갑니다. 이 극명한 대비 속에서 ‘버닝’은 종수의 무력한 분노를 상징하는 불꽃으로 점점 타오릅니다.
영화에서 벤은 종수에게 “나는 가끔 헛간을 태워”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실제 불을 지른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뭔가를 상징하는 걸까요? 감독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은 점차 그것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벤이 말하는 헛간은 이 사회에서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약자들’을 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해미(전종서)는 그 ‘헛간’일까요?
종수는 결국 이 모든 의심과 분노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불꽃을 실제로 피워 올립니다. 버닝은 상징에서 현실이 되고, 관객은 도덕적 혼란 속에 던져집니다. 영화는 이 불꽃을 통해 사회 구조에 짓눌린 개인의 분노와 좌절, 그리고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경고합니다. 버닝은 감정의 불, 욕망의 불, 진실을 알고자 하는 집착의 불이기도 합니다.
진실은 무엇이었는가
<버닝>의 가장 강력한 힘은 끝내 어떤 것도 확정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수많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 단서들은 확실한 진실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해미는 정말 죽었을까? 벤은 연쇄살인범일까? 종수는 진실을 파헤쳤는가, 아니면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폭주했는가?
이 영화는 진실을 쫓는 관객의 본능을 교묘히 자극하면서, 끝내 명확한 결말을 주지 않습니다. 이는 감독 이창동 특유의 불확실성 미학입니다. 그는 진실보다 그 진실을 둘러싼 감정, 인식, 불신, 그리고 모순에 더 관심을 둡니다. 이런 방식은 관객이 각자 자신의 삶의 경험을 대입하여 다른 해석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사회는 종종 명확한 진실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지, 범죄는 왜 반복되는지,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우리는 사실들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지만, 진실은 때로 가장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존재합니다.
<버닝>은 바로 그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여줍니다. 종수는 집착하듯 진실을 좇지만, 관객은 그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가 진정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정면으로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리뷰로 되짚는 이창동의 은유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영화는 반드시 ‘읽고 해석하고 되새겨야 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버닝> 역시 그러합니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사회 구조와 계층, 청년 실업, 무기력, 젠더 이슈 등 복합적인 메시지가 층위별로 숨어 있습니다. 리뷰를 통해 이를 하나씩 되짚는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벤은 영화 속에서 명확한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력적이고, 여유로우며, 삶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리뷰를 통해 보면, 그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에는 사회적 특권층의 태도가 배어 있습니다. 그는 고통을 모릅니다. 해미는 끊임없이 자신을 보여주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진짜 존재’로 봐주지 않습니다. 종수 역시 침묵과 무력감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죠.
이창동은 이 세 인물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위치를 그려냅니다. 특히 해미의 실종은 단지 개인의 사라짐이 아니라, 사회가 한 인간을 어떻게 잊고 지우는지를 상징합니다. 종수는 그 잊힘에 저항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결국 파괴의 길을 선택합니다.
리뷰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선과 상징들을 해석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단순한 줄거리 요약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과정이죠. <버닝>은 그런 점에서 리뷰를 통해 더 깊이 감상될 수 있는 작품이며, 감정과 해석이 중첩되는 ‘느낌의 영화’로서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버닝>은 현실과 환상, 분노와 침묵, 존재와 부재 사이를 타오르는 불꽃처럼 흔들리며 관객을 끝없는 해석의 세계로 이끕니다. ‘버닝’, ‘진실’, ‘리뷰’라는 키워드를 통해 다시 보면,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안과 결핍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명확하지 않기에 더 깊이 있는 영화, <버닝>은 그렇게 우리 안에 천천히 불을 지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