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개봉한 결백은 살인 사건을 둘러싼 법정 드라마로, 단순한 추리물이 아닌 인간의 심리와 가족 간의 감정을 깊이 있게 파고든 작품입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독살 사건과, 그 범인으로 지목된 어머니. 그녀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나선 변호사이자 딸인 인물은 점차 자신도 몰랐던 가족의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는 법정 스릴러 장르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진실, 모성,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더욱 복합적이고 내밀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세 가지 관점에서 결백을 다시 들여다보겠습니다.
조작된 진실, 그 안에 숨은 정의
결백의 핵심은 ‘진실’의 추적입니다. 하지만 이 진실은 명백하거나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 중 발생한 죽음,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어머니—이 둘을 둘러싼 진실은 사회적 권력과 개인의 욕망 속에서 조작되고 은폐됩니다. 주인공 정인은 변호사로서 법의 논리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한 수사나 재판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까지 검토하게 만드는 치열한 여정입니다. 영화는 '법정'이라는 공간을 빌려, 정의란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지를 묻습니다. 진실은 증거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안에 숨어 있는 권력 구조, 왜곡된 관계, 그리고 선택적인 기억까지 모두 밝혀져야 합니다. 관객은 정인의 눈을 통해 하나씩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을 따라가며,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거운 일인지 체감하게 됩니다. 결백은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취했지만, 단순한 누명 벗기기보다 훨씬 더 깊은 진실의 층을 파헤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얽힌 감정들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축은 ‘모성’입니다. 정인은 오랫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고, 자신을 버렸다고 느껴왔습니다. 어머니 역시 딸에게 쉽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사건을 조사하며 정인은 자신이 알고 있던 어머니와, 진짜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달랐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오해’의 서사가 아니라, 모성과 여성의 삶에 내재한 억압과 침묵을 조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왜 진실을 숨겼을까? 영화는 이를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대한 비판과 질문을 던집니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억압과 희생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 정인과 어머니 사이의 감정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점점 변화합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은 마침내 서로의 삶을 마주하게 되죠. 결백은 단순히 한 여성의 결백을 증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모성과 여성의 삶이 갖는 복잡함을 차분하게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잊힌 기억, 그리고 기억의 왜곡
기억은 결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사건 당시의 기억이 흐릿합니다. 그녀가 과연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단서도 ‘기억’에 기반하지만, 이 기억이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진실은 더욱 흐려집니다. 또한 정인 역시 과거에 대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선택적 기억, 억압된 기억, 왜곡된 기억이 얼마나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실은 어쩌면 존재했지만, 기억 속에서 그 진실이 형체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관객은 어머니와 딸의 기억을 따라가며, 무엇이 진짜였고 무엇이 조작되었는지 스스로 추론하게 됩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스릴러가 아니라, 기억과 진실 사이의 심리적, 감정적 간극을 조명하는 인간 드라마로 확장됩니다. 결백은 우리 모두가 기억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지만, 그 기억조차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합니다.
결백은 단순한 법정 스릴러 이상의 울림을 가진 작품입니다. 권력과 거짓에 맞서 진실을 추적하고, 어머니와 딸 사이의 오랜 상처를 마주하며,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퍼즐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당신이 단순한 범죄 해결이 아닌, 인간의 내면과 감정의 진실을 탐색하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결백은 분명 깊은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진실은 때로 불편하지만, 마주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